2020. 2. 10. 23:59ㆍ이탈리아 이야기
로마의 눈
2018년 2월 26일, 바로 오늘을 로마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어떤 날보다도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기억할 것이다. 눈이 좀처럼 오지 않는 로마에 6년만에 눈이 내린 날이다.
소박하지만 특별했던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써본다.
전날이었던 25일 오후 내내 비가와서 로마 워킹투어를 하며 비를 쫄딱맞았다.
몸에 도는 찬 기운을 누르려고 전기장판 불을 세게 올렸다. 언제 잠이 들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침대가 내 몸을 바닥으로 잡아 끄는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 예보가 있었기에 아침에 알람을 맞췄지만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알람 소리가 아니다. 불길했다.
어제 함께 했던 손님의 전화였다. 떼르미니역은 마비되었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역시 만석이며 역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서 피라미데 역으로 왔지만 이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평소 애용하는 택시 앱(my taxi)을 알려드리며 택시를 부르는 쪽으로 안내를 드렸다.
전화를 끊고 그제서야 밖을 보았더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도로, 건물, 자동차 심지어 내 빨래 위에도 눈이 소복했다.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서랍 속의 카메라 배터리를 확인했다.
90퍼센트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곤 당장 나가라는 계시로 받아드렸다.
포로 로마노에 눈이 쌓인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헉소리가 나왔다.
매일 보던 현관의 풍경이 하얀 눈으로 덮인 낯선 모습으로 바뀌니 이마저도 사랑스러워보였다.
로마엔 눈이 거의 오지 않기에 제설 작업이 다른 도시보다 많이 더디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에 차량 정체는 심했고
지하철은 출근하는직장인들과 관광객들로 인해 지옥철로 변했다.
하지만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졌으니 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눈이 온 로마는 천국이 따로 없다.
지하철보다는 조금 막히더라도 눈 쌓인 로마를 눈에 담으며 이동하고 싶었다.
85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늘만큼은 모두의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콜로세움 앞에서 눈싸움하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
<차도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 경적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차도를 막아선 사람들을 이해해주고 기다리는 마음 넓은 로마 버스 기사님들>
<로마 소나무에서 흩날리는 눈 덕에 마치 눈이 내리는 황제의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폭설로 인해 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내부 입장은 불가능했다. 역시나 입장하지 못한 손님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쉽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부디 이 눈이 얼지 않고 따뜻한 햇살에 잘 녹아주길 바란다.>
<누군가에 의해 방금 탄생한 얼음 조각. 이 분 덕에 오늘 미소지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감사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에도 눈이 소복이 쌓였다.>
<통일 기념관 앞에서 눈사람 만들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눈 내린 로마의 진풍경이다.>
이렇게 눈을 보고 있기만 해도 많은 이들이 동심으로 돌아간다.
노부부가 나란히 산책 나온 모습은 아이들만큼이나 많이 보였다.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눈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즐기는 로마인들 그리고 여행자들이 있어서 눈 온 로마가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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